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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례] 장애인 속여 성착취… 통화기록 1천쪽 뒤져 잡았다
 “제 딸이 사귀는 사람에게 성폭력을 당하는 것 같아요.” 지적장애인 ㄱ씨 어머니는 지난해 딸과 교제 중이던 ㄴ씨를 경찰에 신고했다. 딸의 신체 사진을 전송받아 유포하는 것 같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정작 ㄱ씨는 경찰 조사에서 남자친구의 잘못이 없다고 말했다. “저를 괴롭히는 사람이 많아요. 해킹범들이 있어요.” ㄱ씨는 해킹범들 협박 탓에 자신이 다른 남성과 강제로 성관계를 할 수밖에 없고, 불법 촬영 피해까지 당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대전경찰청 여성대상범죄 특별수사팀 박안나 경위는 ㄴ씨와 가해자로 추정되는 또 다른 남성 3명의 휴대전화를 압수해 분석하다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ㄴ씨가 2021~2024년 페이스북에 가상인물 계정 4개를 만들어 해킹범인 척하며 피해자를 성착취해온 것이다. 박 경위는 ㄴ씨가 범행에 사용한 다른 휴대전화를 찾아내 압수하고 1천쪽에 이르는 통화 기록을 분석해 범행 증거를 차곡차곡 확보했다. 혐의 사실을 전면 부인하던 ㄴ씨는 증거가 쌓이자 혐의 일부를 인정했으며, 구속 상태로 검찰에 넘겨졌다. 박 경위는 4일 서울 영등포구 하이서울유스호스텔 회의장에서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전성협)로부터 성폭력 피해자 인권을 적극 보장한 노력을 인정받아 ‘디딤돌상’을 받았다. 전성협은 “가해자가 지적장애인 피해자와 남성 미성년자 등을 범행에 끌어들이는 과정에서 적극적인 속임수(위계)와 협박을 활용했는데 이런 범행을 입증하기 위해선 고난도의 수사 기법이 요구됐다”며 “박 경위가 전문적이고 적극적인 수사로 교제를 가장한 장애인 성착취 가해를 밝혀냈다”고 설명했다. 이날 뜨거운 박수를 받으며 시상 무대에 오른 박 경위는 “저희 수사팀장님인 김선상 경감님, 팀원들이 최선을 다했고, 포렌식 담당자 등이 모두 애썼다. 저와 소속은 다르지만, 동대전성폭력상담소 설이숙 소장님, 오명신 팀장님 이하 직원분들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공소장 변경으로 최대 징역형 ‘승소’한 검사 ‘줄넘기 국가대표 성폭력 사건’을 맡아 적용 혐의를 형법상 의제강간(성인이 미성년자와 성적 행위를 한 경우 처벌, 최대 징역 3년)에서 청소년성보호법상 위계 등 간음(최대 징역 5년)으로 적정하게 변경한 의정부지방검찰청 이지혜 전 검사도 ‘디딤돌상’을 수상했다. 전성협은 선정 이유에서 “두 번의 검사 교체로 인해 잠시 중단됐던 사건이다. 이 검사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가 단순히 성인-아동·청소년이 아닌, 코치와 선수라는 점을 반영해 스포츠계의 구조적 문제로 인해 아동·청소년을 성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상황을 간과하지 않고 가해자를 엄벌에 처할 수 있도록 공소장을 변경했다”고 설명했다. 또 “검사가 피해자 국선변호사, 피해지원기관과 사건 현황에 대해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공유하며 승소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 전 검사는 이날 시상식에서 “피해자가 7살 때부터 ‘줄넘기 천재’로 운동을 하다가 중학생이 되면서 코치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는데, (사건 담당 검사로서) 피해자가 사건을 폭로한 뒤 미래에 대한 희망을 놓은 상태인 게 가장 걱정스러웠다”며 “(사건을) 처리하면서 내가 피해자 입장이었으면 어땠을까 고민해보니 공소장 내용을 그렇게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피해자의 고통이 수사·재판으로 조금이나마 덜어지길 바랐다. 피해자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고 꿋꿋하게 살아나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이날 전성협은 박 경위, 이 검사를 비롯해 지난해 성폭력 사건 수사·재판 과정에서 피해자 인권 보장에 기여한 ‘디딤돌’ 수상자 21명(9개 사건)을 발표했다. ‘56년 만의 미투’ 최말자씨의 재심 청구 기각 결정을 파기환송한 대법원 제2부(박영재·김상환·오경미·권영준 대법관) 등이 디딤돌에 포함됐다. 피해자가 행복해야 마을공동체도 행복하다 수사·사법기관 소속은 아니지만 피해생존자의 인권을 보장하는 데 기여한 ‘특별디딤돌’은 1건으로, 성폭력을 개인 문제가 아닌 마을공동체 문제로 해결하고자 노력한 곡성군 죽곡면 삼태마을 공동체가 수상했다. 전성협은 “삼태마을 공동체는 (강제추행·폭행) 피해자로부터 처음 피해를 듣고 전라남도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 신고함으로써 적극적으로 개입해 추가 피해를 막았으며, 피해자가 고소를 망설일 때 지속해서 설득·지지해 고소를 결심하도록 조력했다. 수사·재판 과정에서도 마을 주민 2명은 가해자의 보복 위험을 무릅쓰고 참고인으로서 진술·증언해 피해자의 진술 신빙성 확보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사건이 알려진 뒤 일부 주민이 피해자를 비난하는 2차 피해가 발생했으나 마을공동체는 피해자 보호에 적극적으로 나서 추가적인 피해를 예방했다고 했다. 전성협은 삼태마을 공동체가 “사회안전망으로서 역할”하며 “마을 내 성폭력 사건이 발생할 때 공동체가 어떻게 대응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느냐에 따라 사건의 향방이 결정됨을” 알게 해줬다고 의미 부여했다. 이날 시상식에 참여한 박진숙 삼태마을 운영위원은 “이 사건이 터졌을 때 마을 어머님 가운데는 ‘하루에도 열닷번 당하는 일 아니냐’ ‘다 암소리(아무소리) 안 하고 살고 있었어’ 같은 이야기를 한 분들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갈 마을이고 우리 아이들이 같이 살고 있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해보자고 마을 모임에 제안했다”면서 “피해자가 매우 두려워했음에도 정말 많이 성장했다. (피해자가) 앞으로도 마을에서 같이 살 것이라고 말해서 매우 감사하다”고 전했다. “강제 키스 때 왜 혀를 깨물지 않았나?” 2024년에 등장한 검사 질문 전성협은 피해자 인권을 침해하고 2차 가해한 경찰·검찰·판사 등 사건 담당자 23명(10개 사건)을 ‘걸림돌’로 선정했다. 피해자에게 “(가해자가) 강제 키스했을 때 왜 혀를 깨물지 않았나” 등의 질문을 한 전주지방검찰청 정읍지청 정연우 검사 등을 비롯해 가해자 중심의 성폭력 통념과 젠더폭력에 대한 몰이해를 드러낸 수사·사법기관 종사자들이 여기에 포함됐다. 전성협은 2004년부터 매년 시민감시단을 발족해 전국의 성폭력 수사·재판을 모니터링한 뒤 디딤돌·걸림돌을 선정해 발표하고 있다. 심사위원단은 현장 활동가, 변호사, 법학자, 전성협 대표단·집행부를 포함한 6명으로 구성됐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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